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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건한 한미동맹을 일군 국군의 아버지
도민연합회 고문, 제5대, 6대 평남도민회장 역임
2020년 07월 21일 (화) 09:48:30 이북도민회 kbg0070@dreamwiz.com
   
   
   
   
   
   
**********도민사회, 나라사랑의 정신과 백절불굴의 용기 계승 다짐******** **********대한민국 최초의 4성 장군...한미혈맹의 표상********** 평안남도 강서 출신으로 이북도민회중앙연합회 고문이자 제5대, 6대 평안남도 중앙도민회장을 역임한 6.25전쟁의 영웅이자 대한민국 최초의 4성장군인 백선엽 예비역 대장이 지난 7월 10일 별세했다. 고 백선엽 장군 안장식은 15일 대전시 유성구 갑동 국립대전현충원 장군2묘역에서 엄수됐다. 행사는 개식사, 고인에 대한 경례, 추도사, 헌화 및 분향, 하관, 허토(흙을 관 위에 뿌리는 절차), 조포 및 묵념, 참모총장 인사말, 폐식사 순으로 최고 예우를 갖춰 거행됐다. 고인의 유족을 비롯해 서욱 육군참모총장, 로버트 에이브럼스 연합사령관,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 예비역 장성단체(성우회) 회장단, 역대 참모총장 등이 참석했다. 김판규 전 육군참모총장은 추도사에서 "장군님은 위기마다 대한민국을 구해 세상 사람들이 '살아 있는 전설'로 부른다"며 "조국의 별로 이 땅을 지키시다 하늘의 별이 되신 장군님께서 더 영롱한 별빛을 뿌려주는 호국의 큰 별이 돼 주셨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어 경북 다부동 전투 참전용사와 장병 등 8명은 백 장군 묘에 허토했다. 허토용 흙은 고인이 생전에 '의미 있다'고 생각한 다부동 등 6·25 격전지 8곳에서 퍼 온 것이라고 육군은 설명했다. 서욱 육군참모총장은 "장군님께서는 사랑하는 전우가 있는 곳에서 행복한 웃음을 짓고 계실 것"이라며 "이제 무거운 짐은 후배에게 내려놓고 평안하시길 바란다"고 했다. 6·25전쟁 당시 전투복과 같은 모양의 미군 전투복을 수의로 착용한 고인은 유족의 눈물 속에 영면에 들었다. 한편 고인은 1920년 11월 23일 평남 강서군 덕흥리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평양에서 지낸 뒤 평양사범학교를 졸업하고 1941년 만주군관학교를 나왔다. 일본군 간도특설대에 배치됐던 고인은 해방 직후인 1945년 평양에 돌아왔고, 조만식 선생의 비서로 일하다 김일성이 권력을 잡자 그해 12월 월남했다. 월남 직후 군사영어학교에 들어간 고인은 1946년 국군의 전신인 국방경비대에 입대해 부산 제5연대 중대장을 맡았다. 6·25전쟁 직전인 1950년 4월 대령으로 제1사단장이 되어 개성 지역을 담당했다. 고인은 1사단장에 이어 1군단장, 육군참모총장, 휴전회담 한국 대표, 주중한국대사, 교통부 장관 등을 지냈다. 1948년 정부 수립 직후에는 군 내부 남로당 숙청 분위기 속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 구명에 적극적으로 나서기도 했다. 6·25 전쟁 당시에는 낙동강 전투와 38선 돌파 작전 등 결정적인 전투를 지휘했으며 그 공로를 인정받아 1953년 한국군 최초로 대장으로 진급했다. 그 때 나이 33세였다. 6·25전쟁 당시 최대 격전지였던 경북 칠곡의 낙동강 전선 다부동 전투 때는 패퇴 직전의 아군을 모아놓고 “내가 앞장서겠다. 내가 물러나면 나를 먼저 쏘라”며 적지로 돌격했고 전세를 뒤집었다. 고인은 자신이 겪은 가장 치열했던 전투는 1950년 여름 1사단장으로 낙동강 전선을 사수한 이 전투라고 밝혔었다. 두 달 가까이 부하 장병들과 죽기를 각오하고 싸웠고, 전투 현장은 그야말로 생지옥과 같았다고 말했다. 전세가 역전돼 국군과 유엔군이 북진할 때는 “나라의 자존심이 걸렸다”며 행군을 강행해 1950년 10월 19일 미군보다 먼저 평양에 입성해 태극기를 꽂았다. 백 장군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평양에 입성했을 때가 내 생애 최고의 날이었다. 평생 잊을 수 없었다”며 “1사단장으로 한미 장병 1만5000여명을 지휘해 고향(평남 강서)을 탈환했다”고 말했다. 정전 회담 때는 한국군 대표로 참가했다. 백 장군은 1959년 합참의장을 지낸 뒤 1960년 5월31일 예편했다. 태극무공훈장을 두 차례나 받았다. 예편 직후에 주중(대만) 대사로 부임한 백 장군은 1961년 5·16 군사정변 이후 프랑스·캐나다 대사 등을 거쳐 교통부장관을 지냈다. 장관 재직 시절 서울 지하철 1호선 건설을 진두지휘했다. 백 장군은 국방대학교 사상 첫 명예 군사학 박사 학위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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