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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적과 인종을 뛰어넘는 보편적 인간사랑<임정100주년특집>
이태준 열사, 한·몽 친선의 상징적 인물
2019년 04월 15일 (월) 10:52:53 이북도민회 kbg0070@dreamwiz.com
   
   
   
   
   
   
--- 안창호 권유로 항일 비밀결사단체 청년학우회 가입 -- --- 몽골국왕 어의로 활약하며 제1급 국가훈장 받기도 -- 몽골 대통령궁과 아셈 회의장에서 자동차로 15분거리에 자이승 승전탑이 있다. 자이승 승전탑은 몽골의 제2차 세계대전 승전을 기념하기 위해 1971년에 세워졌다. 자이승 승전기념탑은 울란바토르에서 가장 높은 곳으로 울란바토르 시내의 전경을 내려다볼 수 있는 전망대 역할도 하고 있다. 바로 이 승전탑 인근에 위치해 있는 곳이 바로 이태준 지사의 기념공원이다. 이태준(李泰俊, 1883~1921)은 몽골에서 독립운동을 펼친 인물로서 한국독립운동사 뿐만 아니라 한국근대사에 커다란 족적을 남겼다. 이태준은 몽골국왕(Bogd Khan)으로부터 제1급 관리등급의 국가훈장인 '에르데니-인 오치르'('금강석'이란 뜻)를 수여받은 인물로 오늘날 한․몽 친선의 상징적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이태준은 또한 1921년 2월초 몽골을 침범하여 살육과 노략질로 공포와 광란의 폭압정치를 실시한 러시아 백위파 대장 운게른 부대에게 학살당한 비운의 애국지사이기도 하다. -편집자 주- --이태준 열사의 발자취를 찾아서-- 이태준의 자(字)는 원일(元一)이고, 호는 대암(大岩)이다. 몽골정부의 공식문서에는 “고려국 국적민 의사 리다인’으로 나오는데 ‘다인’은 이태준의 호인 ‘대암’을 몽골어로 표기한 것이다. 당시 이태준이 본명 대신에 호인 ‘대암’을 사용했고, 몽골에서도 그렇게 통용되었다. 이태준은 1883년 11월 21일 경남 함안에서 출생하였다. 이태준은 2형제의 장남으로 결혼하여 두 딸을 낳았다. 이태준의 부인은 중국으로 망명하기 전에 사망하여 두 딸은 그의 동생(이태식)이 맡아 길렀다. 이태준은 어린 시절 고향에서 한학을 배웠다. 한성(서울)으로 올라오기 전에는 생가 근처 산 너머에 위치한 기독교 교회에 다녔던 것으로 보이며, 기독교 선교사를 통하여 의료선교사가 설립했던 세브란스의학교에 입학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태준은 24세인 1907년 10월 1일에 세브란스의학교에 입학하였고, 약 3년 9개월만인 1911년 6월 21일에 졸업하였다. 그의 나이 28세였다. 이 의학교는 1885년 4월 개원한 한국 최초의 서양식 병원인 제중원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올리버 알 에비슨이 교장으로 있었다. 1908년 6월 스승이자 동지인 김필순은 졸업해 한국최초의 의사 7명 중 1명이 됐으며, 모교에 남아 후학을 가르치면서 일제의 침략에 맞서 활발한 활동을 벌였다. 의학생 이태준은 1909년 말 안중근의 이토 히로부미 암살 사건으로 체포되었다가 19010년 2월에 석방되어 세브란스병원에 입원 중이었던 안창호의 권유로 항일 비밀결사단체인 신민회의 자매단체 청년학우회에 가입했다. 그가 4학년이던 1910년 8월 조국은 일제에 의해 강제로 병합 당했다. 이태준 선생은 1911년 6월2일 세브란스병원 의학교를 제2회로 졸업하고 의술개업인허장(제92호)을 수여받았다. 이태준은 일제가 날조한 ‘105인 사건’으로 체포위기에 처하자 중국을 거쳐 몽골로 망명했다. 이 선생은 몽골에 비밀군관학교 설립 계획을 갖고 있던 김규식의 권유로 1914년 몽골 고륜(오늘날 울란바토르)에 정착해 동의의국이라는 병원을 개원했다. 당시 몽골은 라마교의 영향을 받아 미신적인 방법으로 병을 치유하고 있었으나 선생은 근대적 의술로 몽골인의 70~80%가 감염된 전염병을 치료했다. 몽골의 마지막 황제인 보그드(Bogd)칸의 어의가 됐고, 당시 외국인에게 수여된 최고 등급의 몽골 국가훈장을 받기도 했다. 몽골국왕(Bogd Khan)으로부터 제1급 관리등급의 국가훈장인 ‘에르데니-인 오치르’(‘금강석’이란 뜻)를 수여받은 인물로 오늘날 한·몽 친선의 상징적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몽골사람들은 그를 신인(神人) 혹은 극락에서 강림한 여래불(如來佛)을 대하듯 했다. 몽골에서 의술을 베풀며 두터운 신망을 얻은 선생은 몽골과 중국을 오가는 애국지사들에게 숙식과 교통 등 편의를 제공하고, 신한청년당 대표로 파리강화회의에 파견된 김규식에게 독립운동 자금(2000원)을 지원했다. 또한 1921년에는 한인사회당 비밀당원으로 소비에트정부가 대한민국임시정부에 지원한 자금 50만 루블의 금괴 중 8만 루블을 김립과 함께 상하이로 운송했다. 몽골 고륜으로 돌아오던 길에 북경에서 김원봉을 만나 의열단에 가입, 폭탄제조기술자인 헝가리인 마쟈르를 의열단에 소개해 의열 투쟁의 성공을 도왔다. 하지만 몽골로 돌아와 4만 루블의 금괴를 추가로 운송하던 중 러시아 백위파 군대에 붙잡혀 1921년 38세 젊은 나이에 순국했다. 정부는 고인의 활동을 기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한편 대한민국 정부는 이태준 선생에게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아름다운 몽골 초원에서 고이 잠들어 있는 이태준 선생은 위대한 의사요, 애국지사였다. 그의 독립운동은 단순한 일본에 대한 항일운동의 차원에서가 아니라, 국적과 인종을 뛰어넘는 보편적 인간사랑의 실천차원에서 전개되었다. --한국과 몽골의 교류-- 한국과 몽골은 형제의 나라로 불릴 만큼 오랜 역사를 공유하면서 인종적, 문화적, 정서적으로 특별한 유대관계를 이어왔다. 이러한 배경을 바탕으로 양국은 1990년 수교 이래 정치, 경제, 통상, 사회, 문화, 개발협력 등 다양한 분야에서 교류와 협력을 비약적으로 증진시킬 수 있었다. 양국간 활발한 인적교류는 양국관계가 얼마나 발전되어 왔는지를 잘 보여주는 지표이다. 2016년 현재 한국에 거주하는 몽골인은 3만명이며, 이는 몽골 전체인구에 1%에 해당된다. 또한 유학이나 취업 등으로 한국에 거주한 후 몽골로 귀국한 숫자가 약 30만명에 이른다. 한국에서 공부하는 몽골 유학생들이 5천명이 넘고, 몽골에서 한국어를 배우는 학생들 도한 4천명을 넘어섰다. 몽골에서 약 3천명의 한국인들이 거주하고 있으며 연간 양국 국민간 상호 방문객은 약 15만명이다. 2015년 한몽수교 25주년을 기념하여 다양한 문화행사들이 개최되었으며 이를 통해 양국 국민간 서로에 대한 친근감과 호감도가 더욱 높아졌다. 서울-울란바타르 및 부산-울란바타르 직항편의 운행에 따라 양국간 인적교류는 더욱 증가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2016년 양국 관계발전에 매우 중요한 해로 기록될 것이다. 엘벡도로지 대통령이 5월 한국을 공식 방문하였으며 또한 당시 박근혜 대통령도 7월 ASEM 정상회의 참석을 계기로 몽골을 공식 방문했다. 한편 이낙연 국무총리는 지난 3월 26일 몽골에서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한 이태준 선생 기념공원을 방문, 참배를 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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