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샘터의 뒤표지에는 광고가 없다. 창간호부터 무기명의 글로 채워졌다. 매월 책을 받으면 뒤표지부터 읽는다고 할 정도로 많은 독자들이 이 글을 아낀 것으로 정평이 나있다. 그 글들을 고스란히 한 권의 책에 담았다.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는 인생과 나이 듦, 우리 사회에 대한 깊은 성찰이 가득하다.
이 책은 ‘어른들의 학문 / 질 수밖에 없을 때 / 문제를 내는 삶 / 꽃을 보려거든 술을 마시려거든’ 네 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 장은 계절 테마를 가지고 있는데, 여름(성숙), 가을(나이 듦), 겨울(성찰), 봄(행복, 희망) 순이다. 봄-여름-가을-겨울이 아니라 여름에서 시작해 봄으로 끝나는 구성을 택한 것은 ‘희망’을 이야기하기 위함이다.
이 책이 궁극적으로 전하고자 하는 것은 참된 삶을 사는 지혜이다. 인생의 사계를 보내고 다시 봄을 맞은 노대인의 지혜는 인생의 절정에서 혹은 내리막에서, 좌절과 패배의 질곡에서, 희로애락의 순간마다 지침이 되어 준다.
제목인 ‘천천히 서둘러라(Festina lente)’는 로마 황제 아우구스투스가 한 말로 서두르되 내가 무엇을 위해서 서두르는지를 분명하게 인식하라는 뜻을 담고 있다. 저자는 인생의 의미를 찾아내어 목적을 가지고 살아간다면 순간순간을 더욱 의미 있게 보낼 수 있을 거라고 밝힌다.
월간 샘터의 창간인이자 이 책의 저자인 김재순 전 국회의장은 올해 미수(米壽, 88세)를 맞았다. 많은 이들이 그를 정치인으로 기억 하지만 그가 문화인이자 지성인으로 우리나라의 출판문화계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는 경제 개발의 논리가 지배하던 1970년에 ‘문화’와 ‘교양’의 중요성을 역설하며 교양지를 창간했고, 지금까지 평범한 사람들의 행복을 추구한다는 창간 정신을 지켜 왔다.
그가 뒤표지에 써온 글들에는 그의 이러한 정신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2002년에는 대장암 투병으로 글을 이어 가기 힘든 상황이었지만 그는 연재를 멈추지 않았고, 신이 우리에게 절망을 보내오는 것은 생명을 불어넣기 위함이라는 글을 써서 독자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었다.
‘샘터’를 창간한 것이 45세 였으니, 그는 샘터와 함께 반평생을 보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90이 가까운 나이에도 그는 다달이 샘터에 실릴 글을 직접 쓰고, 하루 세 시간 이상 책을 읽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 책을 통해 그는 우리 사회의 큰 어른으로서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가 무엇인지, 행복한 삶이란 어떤 삶인지, 그리고 어떠한 식견으로 세상을 바라보아야 하는지 들려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