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로 코메디언 송해 선생이 출연한 ‘군함도에서 백두산 까지’가 추석연휴 중 방영됐다. 일본, 중국, 러시아에 이르기까지 근대사의 소용돌이를 겪은 우리 민족의 아픔을 융화시킨 프로다. 백두산 천지연 앞에서 ‘아리랑’을 부른 선생의 간절한 표정에 고향을 두 고온 실향민들의 한(恨)이 농축되었음을 느낀 건 나 하나만이 아니었으리라.
고향이 황해도인 송해 선생은 ‘실향민’이다. 1945년 월남하셨으니 올해로 실향 71년째다. 송해 선생은 우리나이로 올 아흔(90)이다. 선생의 온몸에서 풍기는 ‘망향’(望鄕)의 깊이로 봐 고향 땅을 밟기 전 절대 활동을 중단하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다. 송 선생이야말로 진정한 ‘실향민 노익장’이시다.
남북이산가족 상봉 없는 한가위를 보낸 실향민들의 실망이 가슴에 ‘짠’하게 전해진다. 그 허전함 속에 들려온 북한 함경북도 일대의 ‘대홍수’ 소식은 함경도 출신만 아니라 실향민 모두에게 또 다른 아픔으로 다가왔을 것으로 짐작된다.
북한 표현대로 ‘해방 후 처음 되는 대재앙’으로 ‘사망자와 행불자 등 인명피해가 수백명에 달하며 6만8900여명이 한지에 나앉았다’며 국제사회에 손을 벌리면서도 평양 등지에서 ‘핵탄두 폭발시험 성공 축제’를 열었다는 소식에 실향민들의 속은 더 끓을 수 밖에 없다. 수해가 난 건 8월 29일부터 9월 2일 사이, 5차 핵실험이 9월 9일 실시됐으니 주민들이 빠져 죽고 깔려 죽는 순간 수해지역을 구호하고도 남을 천문학적 비용을 들여 핵을 터뜨린 셈이다.
북한의 궤도 이탈이 거듭되면서 조용히 눈을 감고 ‘통일’을 생각하는 시간이 오히려 늘었다. 북한의 비정상이 통일을 오히려 앞당길지
모른다는 예감을 떨칠 수 없다. 통일이 되면 남북간 단절된 70여 년의 시간과 공간을 연결하는 기(機)와 제(制)를 어디서 어떻게 찾아야 할까?
답은 분명하다. 우리 ‘실향민’이다. 특히 북한 땅을 눈에 깊이 새긴 실향민 1세대 또는 1.5 세대만이 1945년 일본이 패망하고, 38선 이북에 북한 공산정권이 들어서면서 단절된 과거와 현재 사이에서의 시간여행이 가능하다. 단절된 시간의 끈을 이어주는 것은 물론 남북의 간극을 메워 줄 주인공 역시 노익장 실향민들이다.
목숨을 걸고 사선(死線)을 넘은 실향민 1세대야 말로 통일의 열정을
동력으로 간직한 ‘노익장’들이다. 그 정열을 영화 ‘국제시장’에서 확인했고, 그 정열이 조국 근대화와 산업화에 기여했다고 믿는다. 실향민 노익장의 역할은 앞으로도 계속된다. 그 중에서도 통일의 최전선에 굳건히 서 계실 것으로 믿는다.